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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s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사랑을 전하는 편지엔 간절한 낭만이 있습니다. 가슴속을 채운 오만 가지 마음을 선별해 ✍🏻문장으로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죠. 편지를 쓰며 내 마음을 재차 마주하게 되고, 감정은 깊어져만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했던 아티스트의 편지를 여러분에게 보낼게요. 💌 꾹꾹 눌러 적은 사랑이 느껴지나요?


 

❶

박수근 & 김복순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귀여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현대화랑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를 본 적 있나요?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고요하고 따뜻합니다. 이 중 한 여인의 이름은 김복순일 것 같아요. 박수근은 아내를 고향의 빨래터에서 처음 마주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죠. 아마 이날 이후 그의 눈에는 빨래하는 복순이 아른거렸을 거예요. 이미 약혼자가 있던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박수근은 직선으로 내달리는 편지를 씁니다. 누구보다 날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상대방의 고백에 동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게 둘은 여섯 아이의 부모가 됩니다. 결혼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멀리 떨어져 지냈지만, 매일같이 날아오는 편지 덕분에 쓸쓸할 틈이 없었다고 해요. 일기처럼 세세히 적은 편지는 그들의 기쁨이고 삶의 힘이었겠지요.
 

이미지 출처: 박수근 미술관

 

❷

이중섭 & 이남덕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와 눈이 더더욱 맑아지고… 남덕 씨를 고결하고 아름다운 행복한 천사로 만들어 줄 것이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의 작은 부분 하나까지 별명 붙이고 싶어지지 않나요? 화가 이중섭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도 그랬습니다. 그는 턱이 긴 탓에 일본어로 턱을 뜻하는 ‘아고’에 성을 붙여 ‘아고리’로 불렸습니다. 반면 아내는 발가락이 길어 ‘발가락 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심지어 ‘아스파라거스 군’이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둘은 이중섭이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만났습니다. 함께 미술을 공부하는 캠퍼스 커플이었죠. 졸업 이후 자주 만나기 힘들어지자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일년에만 80통의 편지를 보내며 변치 않는 사랑을 열렬히 표현합니다. 광복 세 달 전,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어 부부가 됩니다. 자신을 믿고 바다를 건너와 준 아내에게 그는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의 남덕이라는 이름을 선물해요.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병약해진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이중섭은 홀로 한국에 남아요. 그가 가족에게 닿을 방법은 다시 편지뿐이었죠. 서신 가장자리엔 이중섭이 추억하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그렸어요.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밝고 예쁜 색으로 표현했죠. 이중섭은 단 한 번의 재회 후 영영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해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서서히 병들며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사랑스러운 편지에서 자꾸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유겠죠. 
 

이미지 출처: 혜화1117

 

❸

김환기 & 김향안

 

“1955년 멀리 파리에서 처음 성탄절을 맞이하는 나의 향안에게. 행복과 기쁨이 있기를 마음으로 바라며 진눈깨비 날리는 성북동 산 아래에서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어 준다 너를. 나의 사랑 동림이”
 

이미지 출처: 환기미술관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아내에게 보낸 김환기의 편지입니다. 1955년 진눈깨비 날리는 크리스마스에 마음속으로 아내를 꼭 끌어안는 그가 저 대문 너머 보이는 듯해요. 둘은 서로의 지성에 감명하고 가치관에 공감하며 가까워져요. 당시 가난한 화가였던 김환기는 편지로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곤 했죠. 결국 김환기는 변동림에게 청혼합니다. 그녀는 이미 한 차례 결혼한 바 있지만, 김환기에게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 집안의 반대에 변동림은 남편의 아호를 빌려 이름을 바꿉니다.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의미의 개명이었죠. 그녀는 김환기의 성을 따라 김씨 성에 향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파리로, 또 뉴욕으로 작품 활동을 하러 떠난 부부에게 낯선 환경과 경제적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3년 동안의 파리 생활을 꿈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김향안은 그가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통역과 집안일, 전시까지 모든 것을 챙깁니다. 그저 김환기의 그림이 더 큰 무대에서 인정받기를 바랐지요. 김환기는 지병이었던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 때문에 금방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그녀는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꾸준히 전시를 열며 그의 삶을 기억해요. 마침내 1992년 서울에 환기미술관을 열고 그 옆에 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그를 다시 만날 때까지요.
 

이미지 출처: 환기미술관

 

❹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내 사랑, 프레스코화를 끝내면 티격태격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 오직 서로 사랑하기로 한 것만 기억할 거예요.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소녀 프리다(답장 주세요).”
 

이미지 출처: Smithsonian


프리다는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오랜 기간 누워 지냈어요. 이때 천장에 매단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죠. 프리다는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자 당시 벽화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갑니다. 디에고는 자신의 평가를 기다리는 앳된 소녀에게 한눈에 반해 청혼하고, 프리다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해요. 첫 몇 년의 결혼 생활은 서로에게 충실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디에고의 병적인 바람기가 문제였죠. 원하는 아이를 갖지 못해 슬퍼하는 프리다를 두고 그는 숱한 여자와 바람을 피워요. 

프리다는 참담했지만 디에고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결국 둘은 자유로운 결혼 생활을 합의하고 프리다 또한 다양한 만남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프리다가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디에고의 정치적 영웅인 트로츠키와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결혼은 끝이 나요. 어느 날, 정치적 사건에 휘말린 프리다는 병든 몸으로 심문을 당하고 디에고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와 보살핍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혼한 지 1년 만에 부부로 돌아가요. 드디어 평화가 온 걸까요? 기력을 회복한 프리다는 두 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위의 편지를 보냅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소녀로 남고 싶었던 프리다에게 디에고의 답장은 왔을까요?
 

이미지 출처: SFMOMA
에디터 김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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