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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현대판 늪의 서사

 

인물화에도 장르가 있다면, 윤미류 작가는 장르 ‘개척자’ 아닐까요? 축축하고 우거진 늪지대에 세 인물이 발을 들입니다. 화면 속 그들은 서로 속삭이거나 뒤엉키고, 관객을 겁주거나 빤히 쳐다보기도 하죠. 그림과 그림 사이, 장르적 긴장과 쾌감이 묘하게 흐릅니다. 서른세 점으로 엮은 이번 신작은 ‘늪에 얽힌 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요. 네 번째 개인전을 앞둔 작가와 만나 신작에 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누고 왔습니다. 윤미류가 그려낸 미스터리한 현대판 늪의 서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윤미류 작가 미리 보기 🔎 ]

🎨 2023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2022 전북도립미술관 전북청년 작가 선정. 

🎨 회화라는 매체를 향한 남다른 탐구심과 실험 정신으로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 인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추상적인 감각, 인상, 분위기를 회화적 언어로 표현해요. 

 

‘Finders Keepers 2’, 2024 ©노경

“늪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자연에 없어서는 안 될 생명력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점토와 침수 식물이 뒤엉킨 늪은 한번 빠지면 성인 한 명쯤은 순식간에 잠겨 헤어 나오기 힘든 특성이 있어 인간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전시 서문 중

 

작품 배경이 ‘늪'이라는 걸 듣고 축축하고 끈적한, 색다른 여름맛 전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여름 하면 초록빛의 싱그러움을 떠올리니까요. ‘늪'을 주제로 고른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연출 사진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한 뒤로는 집 근처 야산이나 계곡 같은 자연을 배경 삼고 있어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로 지내며 새로운 주제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를 탐색하다 난지생태습지공원을 발견했죠. 도심 근처에 이렇게 자연이 잘 보존된 장소가 있다니, 흥미롭고 신기했어요. 늪에 얽힌 신화나 설화 속 캐릭터를 찾아보기 시작했죠. 

 

 게르만 신화에 나타나는 물귀신의 일종 ‘내키'. 
나룻배나 백마 등으로 둔갑해 주로 어린 아이를 위협한다.

 

참고한 설화나 신화는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그걸 그림에 어떻게 녹여내고 싶었는지도요. 

딱 한 가지만 참고한 건 아니고 아주 다양해요.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슬라브 신화의 루살카, 머리카락에도 이끼가 자라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설화 속 스왐프 우먼 등.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어요. 무고한 사람을 꾀어내 익사시키거나, 아기를 납치하거나, 간지럼을 태워 죽이는 등 유혹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는 거죠. 하필이면 그 특징이 여성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성격이 다른 이 캐릭터들을 현대적 조건 안에서 그려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들만이 갖는 힘과 미스터리를 어떤 이미지로 그려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출발했어요. 
 


 

사전 취재 겸 전시를 미리 봤어요. ‘이들은 왜 늪에 모인 걸까?’, ‘무섭진 않을까?’, ‘종교 의식을 치르는 중인가?’ 마치 탐정이라도 된 기분이었죠. 모델의 동적인 자세와 표정은 고요한 늪의 표면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동시에 늪 아래의 생태계를 상상하게 했고요. 나중에는 너무 몰입한 나머지 어떤 사건에 휘말린 느낌마저 들었어요. 회화 전시가 이처럼 ‘체험적’일 수 있는 데는 연출의 힘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파운드리 서울은 작가라면 욕심낼 만한 멋진 공간이에요. 넓고 층고가 높아 스케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로선 여러 가지를 시도 해볼 수 있었어요.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늪으로 상정하고, 그림 속 공간이 전시장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주려 했죠. 구체적으로는 지하 1, 2층에 걸쳐 그림에 나타나는 낮과 밤의 분위기를 녹여내고 싶었어요. 

특히 지하 2층 공간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어둑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벽도 까맣게 칠하고, 검은색 커튼으로 획을 나눈 구간도 있어요. 늪의 물과 비슷한 컬러의 카펫도 깔았죠. 질척이는 듯한 질감을 위해 일부러 모가 긴 걸로 골랐는데요. 직접 밟아보면 깊이감이 사뭇 다를 거예요. 왜 물가는 주변보다 온도가 1~2도 정도 낮다고 하잖아요. 그 서늘함이 관객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Echo in Her 2’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기획 단계에서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늪 아래의 생태계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최근 현장에 다시 가보니 물이 고여있던 웅덩이가 온통 개구리로 덮여있는 거예요. 그 장면이 충격적으로 아름다웠어요. ‘이걸 그리면 어땠을까?’ 했죠. 

 

‘Undercurrent’, 2024 © 노경

 

직접 찍은 사진이 그림의 바탕이 되잖아요.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1.5초 전후가 기록되는 아이폰 ‘라이브’ 기능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요? 

써 본 분은 아시겠지만, 놓치기 쉬운 빛이나 물의 움직임, 인물의 표정 변화 등 찰나를 포착하기 적합해요. 영상인 듯 사진인 기록을 보면서 미세하게 움직임을 조정할 수 있죠. 저에겐 이 방식이 동영상 촬영보다 편리하고 잘 맞더라고요. 이번 전시에서 서른세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촬영한 사진이 수천 장은 될 거예요. 그리고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건 아니에요. 크롭도 하고 색이나 노출, 밝기 조절 등의 과정을 거치죠. 

 

윤미류, <Do Wetlands Scare You?>, FOUNDRY SEOUL, 2024’ 전시 전경 ©노경

 

전시장 한쪽을 가득 메운 대형 벽화 얘기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 위에 걸린 작품도요. 인물 셋이 손을 잡고  원을 이룬 그림인데, 200호 캔버스 두 개를 이어 붙인 거였죠. 마치 오컬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전시를 제안받았을 때부터 생각한 아이디어예요. 처음엔 시트지를 붙일까도 했는데, 시저 리프트를 오르내리며 직접 그렸죠.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영적인, 큰 존재가 그림 속 인물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내고 싶었달까요? 

 

‘Three for One 1’, 2024 ©노경

 

지인을 모델로 섭외하시잖아요. 아는 사이라고 누구나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닐 거 같은데, 혹시 ‘캐스팅 조건’ 같은 게 있나요? 

단지 매력적인 외모의 누군가를 택하는 건 아니에요. 십여 년간 알고 지냈든 불과 몇 차례의 만남이었든 저와 교류가 있는 인물의 흥미로운 지점을 저만의 방식으로 과장하거나, 어울릴 만한 캐릭터를 덧씌우거나, 스스로 연기하게 두는 식으로 작업하죠. 

이번 신작의 등장인물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다큐멘터리 감독 겸 배우, 친구의 친구인 개발자인데요. 캐릭터 특징을 요약해 전달하고, 참고할 만한 시안도 공유하면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제 작업은 그들과 ‘나'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사진 촬영 단계가 드로잉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죠.   

 

모델들은 캔버스 속 자신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반응이 궁금해서 셋에게만 작업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공유했어요. ‘내 고유한 분위기가 사진보다 캔버스에서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난다’,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캐릭터로 보이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같이 간 장소인데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대요. 제가 공간을 크게 왜곡해서 그린 것도 아닌데 말이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얼굴 팔려서 어떡하냐는 얘기도 하고. (웃음)  

 

세 번째 개인전 <방화광>에서 선보인 작품. ‘Brushing Off 2’, 2023 @miryuyoon

 

작가님 특유의 페인팅 스타일도 장르적 매력에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묵직한 붓질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 유화지만 수묵화 같은 느낌도 나죠. 

제 페인팅은 대상과 비슷하게 그리되, 그것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물 위의 반영이나, 수면의 진동, 자연광이 어떤 대상의 표면에 닿는 순간은 정말 찰나잖아요. 이번엔 그 찰나를 오랜 시간 공들여 정밀하게,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이전보다 더 커진 터치와 빠른 스트로크 그리고 최소한의 붓질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했어요. 저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그들만의 시간과 제스처를 머릿속에 그려 보곤 하는데요. 제 그림도 그 과정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면 좋겠어요. 

 

미술 업계에서는 인물화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크기가 작아야 한다, 시선이 정면이 아니어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룰도 존재하고요. 페인터로서 부담은 없었나요?   

인물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캔버스 크기는 갈수록 커지고⋯. 점점 시장과 멀어지는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런데 사실, 시장을 잘 몰라요. 애초에 크게 의식하지 않은 걸지도요. 작품 판매가 작업을 이어갈 힘이 돼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지금은 이것저것 다양한 회화적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다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작업에 온 힘을 쏟아부을 수 있는 시기가 전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을 좋아하고 구매하는 분도 늘고 있고요.

 

그러고 보니 150호 이상의 큰 작품이 많아요. 대형 캔버스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화면 속 인물의 크기가 실제보다 1.5배 정도 큰 비율이어야 보기 좋다는 생각이 있어요. ‘존재감' 때문이죠. 한 발짝 떨어져 그림을 본다고 했을 때, 실제 크기 혹은 더 크게 그려야 압도감을 줄 수 있더라고요. 여기에 배경까지 더해지니 캔버스 두 개를 합쳐 완성하는 경우도 많죠.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릴 때 스스로 되게 재밌어요. ‘이 큰 무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Dripping Wet Ⅲ, 2021 @miryuyoon

 

지금까지 관객에게 들었던 피드백 중 가장 인상적인 게 있다면요? 

‘물귀신 같은 거 그만 그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황당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거예요. 옷과 머리카락이 단지 물에 젖어있을 뿐인데, 제 그림 속 인물에 ‘물귀신’이라는 캐릭터 가치를 부여해 준 거잖아요. 물론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한 거지만, 그 후 페인팅 방향을 인물의 캐릭터를 더 부각하는 쪽으로 잡게 된 것 같아요.  

 

<타이베이 당다이> 파운드리 서울 부스 전경 @foundryseoul

 

올해 글로벌 아트 페어  <타이베이  당다이>에 참가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파운드리 서울과 함께 솔로 부스로 나갔죠. 

한창 전시 준비로 바쁠 때여서 현장에서 직접 반응을 살피진 못 했지만, 설치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파운드리 서울에서 꼼꼼하게 챙겨주셨어요. 특히 연사처럼 나열되는 그림을 그대로 걸지 않고 벽에 45도로 기울여 액자의 한쪽 면만 붙이는 등 국제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주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주셨죠. 

 

2021년부터 매해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동네도, 분위기도 다른 곳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렵진 않은지 궁금해요.

집순이인 저는 그런 기회를 통해서 다른 지역을 겪어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시리즈도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지내면서 시작된 거고요. 또 레지던시 안에 있으면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내 작업실 옆의 누군가도 지금 열심히 작업 중이구나’ 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존재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The Difference Was Clear to Us but You’, 2024 ©노경

 

다음 작품의 배경은 어디가 될지 벌써 기대돼요. 주제나 영감을 슬쩍 귀띔해 줄 수 있나요? 

특정한 날씨 조건에 놓여진 인물을 그려보고 싶어요. 안개가 껴있거나 비바람이 치거나, 햇살이 내리쬐거나 하는. 고전 회화를 보면 날씨가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등 어떤 도상적인 의미를 갖잖아요. 그런 점에서 자연 현상은 무척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에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인터뷰가 발행될 때쯤이면 전시가 오픈했을 텐데요.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에게 감상 팁을 건넨다면요?

지금까지 제 작품에는 주로 한 화면에 한 명의 인물만이 등장했는데요. 이번엔 둘 또는 셋이 있는 장면을 많이 그렸어요. 이들의 관계나 서사를 상상하면서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연결 지어 본다면 전시가 더 재밌게 느껴지지 않을까 해요. 세세하게는 인물의 표정, 서로 엉켜있는 모습에서 발견되는 조형적인 포인트도 주목해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참, 목소리와 얼굴 없이 작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뭐가 있을까 하다 3D 영상을 만들어 봤는데요. 일종의 티저 영상이랄까요? 이걸 먼저 보고 오시는 것도 관람에 도움이 될 거예요. 

 

<𝘿𝙤 𝙒𝙚𝙩𝙡𝙖𝙣𝙙𝙨 𝙎𝙘𝙖𝙧𝙚 𝙔𝙤𝙪?>

📍용산구 이태원로 223 지하 1, 2층 파운드리 서울
🗓️ 8. 23 ~ 10. 5
🎨 작가 인스타그램 @miryuyoon

 

에디터 최안나
사진 파운드리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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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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