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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감보다 진하다
🧬유전자는 이기적입니다. 미술사에도 예술가 𝗗𝗡𝗔를 독차지한 가문이 존재하죠. 가정의 달을 맞아 세계적인 아티스트 집안에 흐르는 ‘화맥’을 따라가봤어요. 누구의 가족 아닌 ‘자신’으로 창작의 싹을 틔워낸 부모·형제가 보였죠. 끈끈한 피와 끼를 나눈 아티스트 가족 6인을 소개합니다.

1 | 그 아빠에 그 딸
블랑슈 호슈데 모네
Blanche Hoschedé Monet
French | 1865 - 1947
클로드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의 딸 블랑슈 호슈데 모네는 10대 소녀 시절부터 그림에 푹 빠져 지냈어요. 종종 모네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죠. 그녀는 모네 평생의 유일한 제자가 되어 빛과 색채 다루는 법을 가까이서 체득했습니다. 훗날 모네가 가장 아꼈다는 큰아들 장과 결혼했지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면서 다시 모네 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그의 시력이 악화하는 동안 딸로서, 든든한 조수로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작품 완성을 도와요. 모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죽기 전까지 그의 집과 정원을 가꾸었고요. 아버지를 유난히 따랐던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블랑슈가 그린 풍경에서 모네의 화풍이 비쳐 보이나요? 모네와 닮은꼴 그림은 프랑스 유수의 박물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어요.

2 | 둘도 없는 ‘금손’ 파트너
에른스트 클림트
Ernst Klimt
Austiran | 1864 - 1892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렸던 형제 아닐까요?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동생 에른스트에게는 귀금속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피가 공평하게 흘렀어요. 둘은 함께 ‘미대생’의 길을 걸었죠. 같은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며 학비를 벌었고, 급기야 친구와 셋이 ‘쿤스틀러 콤파니(예술가 회사)’를 차려 미술 시장에 정식 데뷔합니다. 역사박물관이나 국립극장 등 공공 기관의 벽화나 천장화를 맡으며 기량을 맘껏 떨쳐요.

하지만 에른스트는 스물크여덟에 뇌출혈로 형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돼요. 상실의 아픔으로 형은 3년이나 붓을 놓았고요. 워낙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탓에 남긴 작품이 드문데요. 구스타프는 그의 미완성작을 직접 완성하기도 했어요. 2012년, 에른스트의 그림을 구스타프의 초기작으로 착각한 유명한 일화도 있죠. 두 형제가 함께 그렸을 수도 있다, 아니다 등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3 | 이브 클랭의 인플루언서 엄마
마리 레이몬드
Marie Raymond
French | 1908 - 1988
이브 클랭의 어머니 마리 레이몬드는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하나인 ‘타시즘’ *작가의 자유로운 붓놀림과 거친 터치가 특징 을 주도한 인물이자 흥행한 화가였어요. 예술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뽐냈죠. ‘룬디스 드 마리 레이몬드’라는 정기 모임의 호스트로 나서 추상미술을 옹호하는 예술가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교류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작가, 평론가, 사진가, 갤러리 소유주 들이 모여들었어요. 이뿐인가요? 네덜란드에서 미술 평론을 쓰며 파리의 아트 소식을 알리는 홍보대사로도 활약해요. 이런 활동은 아들 이브에게도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그의 색채 표현에 마리의 지분이 있죠. 비평가 로버트 플렉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브 클라인 작품의 깊이와 에너지를 이해하려면 그의 어머니가 미친 깊은 영향을 헤아려야 한다.”

남편 프레드 클랭도 화가였지만 아들과 엄마 사이가 정신적으로 더 끈끈했던 것 같아요. 둘은 ‘로시크루아니즘 Rosicrucianism’이라는 영적 운동에 뜻을 같이합니다. 신앙과 생생한 색채를 결합해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경험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어 했어요. 34살에 요절한 이브 클랭의 명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모자의 영험한 컬래버레이션이 탄생했을지도요.

4 | 잭슨 폴록의 정신적 지주
찰스 폴록
Charles Pollock
American | 1902-1988
3형제 중 맏이인 찰스 폴록은 어릴 적 두 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가출한 뒤로 그 역할을 대신했거든요. 미술 공부를 위해 LA로 떠났을 당시엔 동생들에게 자양분이 될 예술 관련 책을 꾸준히 보내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자신을 따라 아티스트를 꿈꾸는 잭슨과 함께 뉴욕에서 생활하기도 했고요. 그는 멕시코 벽화 운동의 선구자인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와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으로 사회적 사실주의 작품을 주로 그렸어요. 훗날 그의 그림도 추상에 가까워졌지만, 액션 페인팅을 하는 잭슨의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있죠.

찰스 폴록은 미시간의 벽화 그리기 예술 감독관으로도 일하다 교편도 잡았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20년 넘게 타이포그래피와 에칭을 가르쳤어요. 교직에 몸담으면서도 꾸준히 그렸고요. 문제아 기질이 다분했던 동생과 달리 근면 성실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죠? 그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국립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5 | 마르셀 뒤샹의 각별한 피붙이
수잔 뒤샹
Suzanne Duchamp
French | 1889 - 1963
우리가 아는 ‘흔한 남매’는 아닙니다. 수잔 뒤샹은 오빠 마르셀과 예술적 통찰과 감수성을 공유하는 각별한 사이였어요. 6남매 중 나이도 가깝고 성격도 가장 비슷했다고 하죠. 16세 때 미술 공부를 시작해 인상주의, 큐비즘의 영향을 고루 받다가 오빠와 함께 다다이즘 사조에 뛰어듭니다. 수잔은 회화, 콜라주 등 다양한 방식을 오가며 그림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어요. 남성 중심의 다다 운동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냈고요. 1920년대 초에는 다다이즘을 넘어 ‘타부’라는 독자적인 예술 운동도 일으켜요. 남다른 실험 정신도 남매끼리 닮은 듯하죠?

둘의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옮길게요. 수잔은 오빠의 옛 작업실을 관리해 주던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내 작업실에 가면 병걸이가 있을 거야. 그걸 가져. 내가 ‘레디메이드’로 만들어줄게. (중략) 이렇게 서명해: 마르셀 뒤샹[의 지시대로]”

6 | 3대에 걸쳐 진화한 감각
호세 루이스 이 블라스코
José Ruiz y Blasco
Spanish | 1838 - 1913
파블로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 이 블라스코는 화가이자 미술 선생님이었어요. 아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장본인이기도 하죠. 좋은 학교에서 피카소를 공부시키기 위해 이사를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의 재능을 넘어설 것을 확신해 쓰던 화구도 모두 물려줬어요. 어린 피카소는 아버지로부터 미술 지식을 얻었고 정서적, 물질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아버지가 아닌 페인터로서의 성향은 어땠을까요? 그는 식당에 걸릴 법한 화풍의 그림을 그렸어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죠. 단순하고 정직하게요. 사물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입체파 화가인 아들과는 반대 지점에 있었죠. 부자가 그린 비둘기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실감 나죠?

팔로마 피카소
Anne Paloma Picasso
French | 1949 -
팔로마 피카소는 피카소와 그의 여섯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이에요. 회화가 아닌 디자인에 타고난 감각을 발휘해 주얼리 디자이너로 성장하죠. 입생로랑, 그리스 보석 회사 졸로타스를 거치며 기술과 재능을 갈고닦아요. 그리고 마침내 1980년, 티파니앤코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해요. 벽에 휘갈긴 그라피티에서 영감받은 디자인은 여전한 인기를 누리죠.

활동 후반에는 색색의 원석을 대담하게 커팅하고 과감하게 배치한 디자인으로 브랜드 역사에 여러 획을 긋습니다. 특히 빨간색을 좋아해 레드 립스틱을 시그니처 스타일로 고수하고 ‘팔로마 레드’라는 선홍색을 유행시키기도 했다네요. 붉은 입술과 호화로운 보석이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잘 어우러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