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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있는 텍스트, 아티스트 이상엽

 

이상엽 작가의 그림에선 여러 글자가 보입니다. Love, Life, MONEY 같은 단어가 홀로 서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서로 어지럽게 충돌하는 듯한 작품도 있죠. 그는 지금의 우리를 둘러싼 조건과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화가예요. 새해의 문턱에서 그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경기도 장흥으로 찾아갔어요.


 

가나 아뜰리에에 입주하신 지 얼마가 됐죠?

2021년 10월에 입주했으니까 벌써 1년이 조금 넘었네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집 같아요.

 

작업실 한쪽에 침대로 펼칠 수 있는 소파가 있더라고요. 출퇴근하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는 건가요?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보내요. 물론 잠도 여기서 자고요. 주말에 하루 정도만 성남에 있는 집에 가요.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고 싶기도 해서 일정에 맞춰 일하는 편이에요. 밤 11시에 취침하고, 아침 7시에 일어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다양한 색상의 ‘LOVE 시리즈’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요. 총 몇 가지로 제작된 건가요?

195개예요.

 

딱 떨어지는 수가 아니네요. 그렇다면 이유가 있는 숫자라는 뜻인데.

UN에 집계된 국가의 수예요. 각 나라의 수도, 산업, 종교, 정치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모두 조사한 후 이를 이미지화했어요. 직접 가본 나라는 그곳에서 체험한 것들, 예를 들어 존경하는 예술가나 건축, 문화 등을 저의 관점에 따라 반영하기도 했고요.

 

큰 프로젝트였네요. 시간도 오래 걸렸겠어요. 작품 가운데 놓일 단어를 선택하는 데도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많고 많은 단어 중에 ‘LOVE’를 선택한 배경이 궁금해요.

우선 국가를 초월해 인간 모두가 갈구하는 감정은 무엇일지 생각해봤어요. SNS에서 해시태그가 가장 많은 단어도 사랑이더라고요. 현실 너머의 온라인 세상에서조차 모두 외치는 사랑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현대인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다른지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작품의 크기를 노트북 사이즈로 제작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에요.

 

 

만약 195개국을 컬러와 문자로 나타낸 작품이라고만 알고 넘어갔다면, LOVE를 인류애를 표현하는 단어 정도로 여겼을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아니네요.

모든 추상적인 단어가 그렇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겠더라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밀접하게 뒤엉킨 현대 사회에선 더 그런 것 같고요.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감정조차도 온라인에서 답을 찾고, 표준화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궁금증이 밀려왔죠. 제가 LOVE를 그리는 건 그 의문을 해결해나가고, 사람들과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해요.

 

작가님에겐 사랑은 그럼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아이러니해요. 신과 나를 잇는 초월적인 무언가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감정 자체이기도 하죠.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을 펼쳐내는 조건이기도 했어요. 과거에 지키지 못한 사랑이 있었는데, 속죄하고, 잊으려는 마음으로 다시 붓을 잡은 적이 있어요. 그때 계속 떠오르던 단어가 ‘LOVE’였습니다. 상업 작가가 되지 않으려고 제겐 지극히 개인적인 단어였던 LOVE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작가님의 SNS계정(@lsyxart83)에 최근 새로운 단어를 배치한 작품이 보이던데요.

Love, life, MONEY 시리즈가 현대인과 현대 사회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텍스트였다면, 보다 중립적인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시간만큼은 신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부여하는 조건이더라고요. 그래서 ‘TIME’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HOPE’와 ‘FUTURE’ 시리즈는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담으려는 시각으로 만들었죠. 올해 상반기에 공식적으로 선보이려고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단어가 추가될 예정인가요?

현대 사회의 이면을 찾고, 텍스트에 관한 연구가 지속되는 한 계속 이어 나갈 생각이에요. 색채를 커스텀 해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그만큼 팬들과 교류하는 창구 기능을 ‘단어 시리즈’가 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애정이 더 각별합니다.

 

SNS에서도 팬들과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 하시던데요. 적극적으로 소식을 전하고, 댓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팬에게 들었던 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우리 집에 이상엽 작가 작품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작가로선 어떤 마음이 드나요?

부끄럽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뒤따르고요. 예술가로 성장하려면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좋은 사람이란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하고, 늘 겸손하며 감사하는 사람이겠죠.

 

 

이 인터뷰는 설 즈음에 올라갈 예정이에요. 설은 지난 한 해를 뒤로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기점이잖아요. 이 글을 읽고 있을 사람들에게 ‘덕담’을 남겨주세요.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초 개인주의가 된 세상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쉽게 소비되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듯해요. 작년 한 해에도 그로 인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어요. 이제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사랑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겐 선물일 테니까요.

 

 

에디터 이재현

포토그래퍼, 비디오그래퍼 Keg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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